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헤이스팅스 전투 (문단 편집) == 헤이스팅스 전투 이후 == 윌리엄은 살아남은 잉글랜드 지배층이 당연히 자신에게 항복해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잉글랜드 정복이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캔터베리 대주교를 비롯한 지배층은 재빨리 웨식스의 왕족 [[에드거 애설링]](Edgar Aetheling)을 새 왕으로 내세우며 저항을 계속했다. 윌리엄은 런던으로 진격해서 잉글랜드 저항 세력을 진압해야 했다. 윌리엄은 몇 차례의 교전 끝에 2달 후 버크햄스티드(Berkhamsted)에서 에드거 애설링을 복속시켜 잉글랜드의 왕위를 ~~강탈~~쟁취해냈으며, 1066년 12월 25일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때 항복한 건 지배층뿐이었고, 그 이후에도 윌리엄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며 저항했던 현지의 앵글로색슨 영주(Earl)들과 기나긴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윌리엄은 1067년 초, 막 잉글랜드 왕국의 통치를 시작했을 무렵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앵글로색슨 귀족 콥시(Copsi)를 새로운 노섬브리아 영주(Earl of Northumbria)로 임명하며 잉글랜드의 북부를 통치하도록 파견했다. 하지만 콥시는 노섬브리아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슬프(Osulf)라는 현지 귀족에게 살해당한 후 노섬브리아 영주직을 찬탈당했고, 이 오슬프는 다시 사촌 코스패트릭(Cospatrick)에게 살해당한 후 영주직을 찬탈당했다. 그리고 코스패트릭은 1068년에 다른 앵글로색슨 귀족들과 힘을 합쳐 윌리엄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즉, 노섬브리아 통치하라고 충성스러운 부하를 하나 보냈더니 현지의 귀족에게 살해당하고 작위를 찬탈당했는데 이 찬탈자도 다시 사촌에게 살해 및 찬탈당하고 이 사촌은 노섬브리아를 기반으로 윌리엄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이 1년 만에 일어났다.''' 윌리엄은 1068년에 대군을 이끌고 북부의 심장부인 요크로 진격해 반란군을 모조리 쓸어버렸고, 이번엔 노르만 영주 로버트(Robert)를 새로운 노섬브리아 영주로 삼았지만 이 로버트도 요크에 들어간 바로 '''그날''' 현지민들의 저항을 맞이해 죽었다. 여기에 앵글로색슨 저항군의 구심점인 에드거 애설링[* 저 위에 복속됐다고 서술한 그 에드거 애설링이다. 윌리엄에게 잡혀있다가 기회를 포착하고 북부로 도망쳤다.]의 부탁을 받은 덴마크 왕 [[스벤 2세 에스트리드센|스벤 2세]]가 함대와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에 도착했다. 저항군들이 요리조리 발버둥치다 보니 이번에는 정말 위험한 군대를 잉글랜드로 불러온 것이다. 그런데 스벤 2세는 에드가 에설링의 세력과 함께 요크를 탈환한 뒤, 윌리엄에게 돈을 받는 대가로 덴마크로 돌아가 버렸다. 결국 저항군은 윌리엄의 성깔만 긁어놓고 정작 윌리엄과 싸울 만한 군대는 하나도 가지지 못한 상황에 놓였다. 윌리엄은 자기 어머니가 가죽장인이란 이유로 가죽을 내걸고 모욕하며 대항하던 요새를 사람 한 명 남기지 않고 학살해버릴 정도로 잔혹한 사람이었고[* 요새 수비병을 모두 산 채로 가죽을 벗겼다는 말도 있다.] 당연히 보복에 나섰다. 보복이 절정에 달했던 게 1069년 말부터 1070년 초인데, 저항군은 물론이고 무고한 주민들도 닥치는 대로 죽여버렸으며 진군할 때는 길 양 옆의 밭을 엎어버리고 마을에 도착하면 집과 [[곡식]], 심지어 [[농기구]]들까지 싹 다 불태워버리는 행패를 저질렀고, 여기에 국경 너머의 픽트족까지 옳거니 하고 끼어들어서 같이 약탈을 벌였다(...). 막대한 수의 백성들이 살 곳과 먹을 것을 동시에 잃어버렸고, 이로 인해 '''1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그 유명한 '북부 대학살(Harrying of the North)'이다. 이로 인해 북부는 거의 완전히 초토화됐고, 1080년에 한 번 더 불태운 결과, 앵글로색슨 귀족들과 농민들이 사라지다시피 하여 사실상 빈 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앵글로색슨 귀족들이 죽고 추방당하자 노르만 기사들이 그 영지를 분봉받고 귀족이 되어 사회의 상류층을 장악하고 통제하게 되었고, 앵글로색슨 저항의 심장부이던 북부는 더이상 봉기할 수 없었다. 한편 이런 참상에도 아랑곳 않고 잉글랜드를 철저하게 벗겨먹기 위해 당시에 만들었던 토지대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둠즈데이 북|둠스데이 북]](Domesday Book)이다. 이후 윌리엄의 정복을 기념하여 헤이스팅스 전투를 포함한 잉글랜드 정복과정을 [[인증샷|묘사한 그림]]을 직물 형태로 만든 작품이 만들어졌고, 노르망디 바이외(Bayeux)에 있는 한 성당에 봉헌되었다. 이것이 현재까지 남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전해지는 [[https://www.bayeuxmuseum.com/en/the-bayeux-tapestry/|바이외 태피스트리]]이다.[* 여기에 그 유명한 [[핼리 혜성]]이 그려져 있다. 연초에 혜성이 지나갔는데 그 후에 결과를 보고 "왕이 바뀔 징조"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만 해도 70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이고, 중세 당시의 풍속이나 무장을 고증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